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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돋보기] 낙산사
   
 

[뉴스워치=어기선 기자] 낙산사는 강원도 양양군 오봉산에 있는 사찰로 조계종 제3교구 신흥사의 말사이다. 낙산사가 유명세를 탄 것은 해안가에 위치한 절이기 때문이고, 관동팔경 중 하나다.

낙산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로 671년(신라 문무왕 11년) ‘관음보살’ 진신이 이 해변의 굴 안에 머문다는 말을 의상대사가 듣고, 굴속에 들어가 예불하던 중 관음보살이 수정으로 만든 염주를 주면서 절을 지을 곳을 알려주면서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고 ‘낙산사’라고 불렀다.

이후 소실과 중창을 여러번 거듭했다. 858년 신라 헌안왕 2년 범일대사가 중창했으나 1231년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됐다.

1467년 조선 세조는 금강산을 둘러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낙산사가 몽골 전란으로 쇠락한 채 방치된 것을 보고 중창을 명령했다.

중창은 학열(學悅)이 책임지었고, 칠층석탑이 이 때 지어졌다. 1469년(예종 1년) 정희왕후가 세조를 위해 발원해 범종을 만들었다. 건칠관음보살상도 이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성종 대에 이르러 학열이 노쇠하게 되자 절의 운영권을 두고 다툼이 있었다. 1477년 강릉대도호부사는 성종의 윤허를 받고 쟁송에 대해 입안을 내려 수도하는 수행승이 절의 운영권을 갖도록 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화재를 겪었다. 다시 1624년 인조 원년, 9년(1631)과 21년(1643) 재차 중건이 있었으나 1777년 정조 원년 화재를 당하여 다음해 다시 중건했다.

한국 전쟁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53년에 다시 지었지만, 2005년 4월 5일 23시 53분 경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화일리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이때 21채의 건물이 불타고 보물 479호로 지정되어 있던 낙산사 동종이 소실되면서 보물에서 지정 해제됐다.

산불 이후 동종은 복원됐지만 다시 보물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보물 제479호는 결번으로 남아 있다. 낙산사 동종은 2006년 9월 29일 새로 주조돼 10월 13일 충북 진천에서 시험 타종을 거친 후, 10월 16일 낙산사에 안치됐다.

낙산사 문화재로는 보물 3종, 사적 1종, 명승 1종, 강원도 유형문화재 3종, 강원도 문화재자료 1종 등이 있다.

낙산사 7층 석탐은 조선시대 석탑으로 보물 제499호이고 높이 6.2m이며, 낙산사의 원통보전 앞에 있는데 부분적인 손상은 있으나 상륜부까지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으며 고려시대 석탑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2단의 층을 이룬 지복석 위에 12잎의 복련이 조각된 지대석이 있다.

중석에는 모서리기둥이 없고 그위의 갑석 밑에는 부연과 2단의 굄이 있다. 탑신부는 옥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1개의 돌로 돼 있는데 옥신석에는 모서리기둥이 없고 밑에 넓은 별석을 각 층에 삽입한 것이 특이하다.

 

옥개석은 평평하고 얇으며 추녀 끝은 반전되었으며, 받침수는 모두 3단이다. 라마식의 영향이 보이는 상륜부는 별석 받침 위에 노반이 있고 그위에 청동제의 복발·보륜·보주 등이 청동제 찰주에 꽂혀 있다.

탑신에 비해 기단의 폭이 좁고 옥개석의 체감비율도 낮아 전체적으로 고준한 느낌을 준다. 이 탑은 낙산사가 세조(1455~68 재위) 때 크게 중창되면서 함께 건립된 것으로 생각되며, 강릉 신복사지3층석탑과 유사점이 있다. 2005년 4월 5일 양양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낙산사가 불에 타며 낙산사 7층석탑의 일부가 손상됐다.

어기선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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