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無所有)라는 말이 있다. 흔히들 욕심을 비워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라는 뜻으로 쓰고 있으나 불가에서는 무소유의 의미를 약간 달리한다. 아무 것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익만을 탐하지 말고 그 이익을 가져다주는 전체의 인연을 보며 주어진 여건을 받아들이고 활용하여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 참된 이익을 얻으라는 가르침이다. 역설적으로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을 때 온 세상을 다 갖게 된다는 뜻으로 봐도 될 듯하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해도 힘에 부쳐 이익에 집착할 일 조차 없는 사람들은 무소유의 의미를 느낄 일도 없다.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막대한 이익을 거머쥘 수 있는 돈과 권력을 가진 계층이야 말로 이익을 탐하지 말라는 무소유의 참뜻에서 무게를 느껴야 한다.

사회전체의 이익과 배치되는 특권층의 배타적인 이익은 드러나지 않는 블랙머니와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지닌 이들의 야합에 뿌리를 두고 보다 더 많은 이익을 취하려는 탐욕을 먹고 자란다. 이런 탐욕의 유혹에 빠진 사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적으로 파이 키우기에 나서기에 오늘날 우리 사회분위기가 이토록 혼탁해지고 있는 것이다.

말로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라며 무욕(無慾)과 청빈(淸貧)을 높이 평가하지만 실제로 가진 것 없이 세상 살기는 쉽지 않다. 역설적으로 많건 적건 생전에 모은 재산을 훌훌 털어버리고 빈손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일도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재(財)는 재(災)와 같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사람들은 돈 벌고 재산을 쌓는 일에 거의 평생을 바친다. 부귀와 영화를 인생의 큰 목표로 정해 일생동안 개미처럼 재산 모으는 일에 열중하거나 출세길 찾아 헤매다가 육신이 쇠잔해진 어느날 죽음을 맞는다. 그게 인생이다.

열심히 일해서 떳떳하게 재산을 모아 부자로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존경받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만 비열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 호사하는 사람들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법을 어긴 흔적이 들통나면 기껏 모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차가운 감옥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이미 인생을 망친 뒤에 무슨 소용일까.

권력을 이용한 치부나 권력자의 그늘에서 부를 축적한 경우 두고두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비난의 화살이 아무리 날카롭다 해도 황금의 두꺼운 갑옷을 뚫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제출로 청문 정국이 시작되면서, 2년 전 전관예우 논란이 이번에는 기부금 규모를 놓고 지탄받고 있다. 당시 법무장관 인사청문회 때 황 후보자는 검찰 퇴직 후 대형 로펌 고문으로 재직하며, 17개월 동안 16억원을 벌어들이는 고액수임료 전관예우 논란이 불거졌고, 그는 기부를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합당한 기부를 기대했지만 황 후보자의 인사청문자료에 나타난 지난 2년치 기부금은 고작 1억3000여만원 에 불과하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황 후보자가 ‘십일조’에도 못 미치는 액수를 사회에 내놓은 셈이다. “청문회 당시 마음먹었던 그 ‘(16억원에) 상응하는 드림’에 정말로 상응하는 기부인지 양심에 묻고 싶다”는 야당 의원의 질타에서 움켜쥐고 내놓으려 하지 않는 가진 자들의 표상을 보는듯해 씁쓸하다.

언필칭 가진 자들은 무소유라는 실천적인 교훈을 얻어야 그들도 살고 우리 사회도 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숱한 인연을 맺고 풀면서 살아간다. 그 가운데는 악연도 많다. 돈과 권력을 움켜쥔 사람들이 만나 쉽게 의기투합하면 언젠가는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악연으로 끝나버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돈을 가진 이가 권력의 힘을 얻어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고 권력을 가진 이가 돈의 힘에 의지해 권세를 더 키우려고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불행을 스스로 잉태하는 어리석은 일이다. 새삼 무소유를 실천하다 입적하신 법정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행복을 꽃피우는 토양은 욕심없는 마음자리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멀고 먼 가시밭길이다. 더불어 살맛나는 사회, 희망이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너나없이 사리와 사욕으로부터 마음을 비워야 한다.

버리고 비워야 비로소 얻을 수 있음을 황교안 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가진 자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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