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월드코리안 대기자

노래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어느 나라 어떤 땅에서도 노래는 저절로 흘러나온다. 처음에는 흥얼거리는 수준이었을 테지만 점차 수준이 높아지면서 노래 부르는 이들의 활동영역이 넓어졌다. 노래는 반드시 곡조가 있기 마련이며 여기에 알맞은 가사가 삽입되어 하나의 노래로 완성된다.

가사를 먼저 써놓고 작곡을 하는 수도 많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가무음곡(歌舞音曲)을 즐겨온 민족이다. 일찍이 가야금, 거문고, 해금과 같은 악기를 만들었으며 ‘소리’라는 이름의 창(唱)은 오늘날 국악의 원천이다. 창을 부를 때에는 반드시 장구가 장단을 맞춰야만 격이 맞으며 듣는 이들은 “얼쑤” “좋다”는 등의 추임새를 넣어야 한바탕 신명나는 노래 가락이 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어울리게 되면 저절로 어깨가 들썩거려지며 흥에 겨우면 벌떡 일어나 멋진 춤사위를 보여줄 수도 있다. 노래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활력소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에는 기쁨이 넘쳐나는 노래를 부르고, 슬픈 일이 발생하면 간장(肝腸)을 쥐어짜는 것처럼 안타까운 곡조로 흐른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에게는 용기를 북돋우는 행진곡으로 힘찬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노래는 한마디로 인생의 축소판이며 사회를 리드하는 활력소로서 역할을 다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오래 계속된 노예제도의 희생자였던 흑인들은 그들 특유의 영가(詠歌)를 부르며 설움을 달랬으며 링컨의 노예해방 후에는 이를 살려 흑백을 통합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는 크고 작은 행사를 매일처럼 치르며 살아간다. 행사순서에 대부분 ‘애국가 제창’순서가 들어있다. 이것 역시 애국심을 다지고 통합정신을 기르는데 그 목적이 있음은 물론이다. 공적인 행사에서는 애국가 4절까지 엄숙하게 부르고 있지만 대부분의 행사에서는 1절로 생략하는 수가 많다. 이는 정부가 지도를 잘못해서다.

광복 70년이 되었는데 지금까지 애국가 4절까지 제대로 부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교육당국이 이를 소홀히 취급했기 때문에 생긴 관행이다. 애국가를 부르는 것은 국민의례 중에 두 번째 행사다. 1절만 부르는 생략행위가 계속되다보니 이제는 아예 국민의례 자체를 ‘생략’하는 일까지 생겼다.

사회자가 ‘시간 관계상’이라고 한 마디하고 넘어가는 일이 비일비재다. 그러다보니 일부 진보단체나 노동단체에서는 아예 ‘민중의례’로 이름을 바꾸고 국기에 대한 경례나 애국가제창, 애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없애버리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생을 유지하는 국민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비애국적 행위다. 정부체제를 비판하더라도 국민의 도리와 예의는 갖춘 다음 정정당당하게 비판해야지 국가를 모독해서야 되겠는가. 이번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에서도 어김없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느냐, 합창하느냐 하는 어처구니없는 시비로 정부공식행사와 5.18단체행사가 양분되었다.

어째서 이 문제 하나 때문에 해마다 스스로 분열을 자초하는 것일까. 이 노래는 5.18항쟁 당시에는 출현하지 않았던 노래다. 그 뒤 6월 항쟁을 거치며 민주화운동의 열기가 고조되었을 때 시위대의 단골노래가 되었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효시인 4.19혁명 때에는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애국가를 부르며 시위를 감행했다. 애국가는 행진곡이었으며 혁명가(革命歌)였다.

경찰의 총탄에 쓰러지며 숨을 거둔 186명의 학생들도 애국가를 부르거나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민주화운동과 함께 탄생한 ‘님을 위한 행진곡’은 원래 백기완의 시를 황석영이 개사했다. 작곡가는 김종률인데 작사자를 백기완이라고도 하고 황석영이라고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2절: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후렴: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곡이나 노랫말 중에 어디 흠잡을 데라도 있단 말인가. 이념을 앞세우거나 체제를 비판하는 대목도 없으며 뭉쳐서 함께 하자는 내용뿐이다. 국가보훈처가 이 노래를 5.18행사의 제창곡으로 결사반대하는 것은 북한에서 만든 프로파간다 영화에 이 곡이 배경음악으로 들어갔다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어이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북한영화에 ‘아리랑’곡이 들어갔다면 우리는 아리랑도 버려야 되지 않겠는가. 북한노래인 ‘반갑습네다’ ‘휘파람’은 지금 우리의 공공무대에서 환호를 받으며 불러지고 있는 세상이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시대에 수많은 금지곡을 남몰래 부르며 살아왔다.

자유천지가 된 지금도 전근대적인 노래금지가 국가보훈처에 의해서 자행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5.18행사에서는 국회의장과 여야대표들이 힘차게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으며 참석자 대부분이 동참했다. 입을 꾹 다물고 미동도 하지 않은 사람은 보훈처장 한 사람뿐이다.

국회에서 제창곡으로 결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보훈처가 이를 무시한 것은 국민을 깔보는 행위다. 남북이 분단된 현실에서 우리는 국론을 통일하고 국민간의 갈등을 해소해야할 절박한 입장에 있다. 노래하나 때문에 국민통합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애국과 보훈을 생명으로 하는 국가보훈처가 가슴을 열고 해소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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